
[인터넷 도박]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도박, 전자책, 웹툰 등 디지털 콘텐츠의 ‘소유’와 ‘이용권’을 둘러싼 소비자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서적, 인터넷 도박 디스크 등 물리적인 매체를 소유하고 자유롭게 중고로 거래하거나 소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플랫폼이 보편화되면서 콘텐츠는 더 이상 소비자의 기기에 존재하지 않고, 플랫폼 서버에 저장된 파일을 스트리밍하거나 접근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콘텐츠 그 자체가 아닌, 일정 조건 하에 접근할 수 있는 ‘이용권’을 구매하는 구조가 일반화 되었다.
이 가운데 지난 2023년 유비소프트의 온라인 레이싱 인터넷 도박 '더 크루'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인터넷 도박 이용자들 사이에서 소유와 이용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더 크루는 지난 2014년 출시된 오픈월드 레이싱 인터넷 도박으로, 온라인 서버를 통해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구조였으나, 서버 종료 이후 오프라인 모드가 제공되지 않아 인터넷 도박을 완전히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해당 인터넷 도박은 완전한 멀티플레이 인터넷 도박이 아닌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가 혼합된 형태의 인터넷 도박으로, 유비소프트가 서버를 종료하며 싱글플레이조차 불가능해져 이용자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이에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소비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Stop Killing Games’ 운동이 시작됐다. 해외의 인터넷 도박 인플루언서 로스 스콧이 시작한 이 운동은'더 크루'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인터넷 도박 퍼블리셔들이 서버를 종료해 소비자들이 구매한 인터넷 도박을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게 만드는 행태를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운동은 최근 유럽 시민청원(ECI)에서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며 유럽연합(EU) 차원의 공식 입법 검토 요건을 충족했다. 영국에서는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의회 검토 대상에 올랐다. 다만일각에서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명을 위조하거나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진위 여부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고 있다.
한편 유럽의 인터넷 도박 업계는 이러한 소비자 운동에 반발하고 있다. 유럽의인터넷 도박 퍼블리셔 단체인 비디오인터넷 도박유럽(Video Games Europe)은 4일 성명을 통해 “온라인 서비스 종료는 상업적 지속 가능성과 보안·저작권 보호 측면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이용자들의 요구대로 프라이빗 서버를 운영하거나 오프라인 모드를 별도로 유지하는 것은 개발자의 창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비용 부담을 과도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지난해PC 인터넷 도박 플랫폼 '스팀'에서 벌어진 계정 상속 문제 역시 글로벌 인터넷 도박 이용자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다.한 해외 이용자가 사망 시 자신의 인터넷 도박 라이브러리를 유언으로 타인에게 넘길 수 있는지를 스팀 측에 문의한 결과, “스팀 계정과 그 안의 콘텐츠는 타인에게 이전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스팀은 계정 사용자가 아닌 제3자에게 접근 권한을 제공할 수 없다고 밝히며, 인터넷 도박은 소유가 아닌 개인 라이선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당 논쟁은 콘솔 기반 물리 패키지 인터넷 도박을 경험한 인터넷 도박 이용자들의 인식과 충돌하면서 인터넷 도박 콘텐츠에 대한 소유 개념을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최근 국내에서도디지털 콘텐츠 소유권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내 최대 인터넷서점 예스24가 랜섬웨어 해킹 공격으로 장시간 서비스 장애를 겪으면서 예스 24에서 전자책(e북)을 구매한 이용자들이 전자책을 열람할수 없게 되면서 이용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이후 예스 24는 백업 데이터를 통해 전자책 열람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대여 이용자에게만 대여 기간을 5일 연장해주는데 그치고, 소장권을 구매한 이용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어 논란이 되었다.
한편 예스24 사태를 계기로 전자책의 콘텐츠 신뢰도가 하락하고 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전자책 보안 강화 및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유사한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2025년 1월, 웹툰 플랫폼 피너툰은 서비스 종료를 공지한 후 기업 청산 절차에 돌입했으며, 이용자들이 구매한 콘텐츠에 대한 환불이나 대체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았다.그 밖에도여러 전자책 플랫폼에서사업 철수 등이 이어지며 콘텐츠 접근성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 관련 피해 유형 중 ‘콘텐츠 제공 중단에 따른 피해’가 24.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 소유권 논쟁이 확산되며 전 세계적으로 입법 논의로도 이어지고 있다.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4년 9월, ‘AB 2426’ 법안을 통과시켜 인터넷 도박, 영화, e북 등 디지털 상품의 판매 시 ‘구매’라는 표현 대신 ‘이용권’임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규정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허위 광고로 간주해 제재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19년 ‘디지털 콘텐츠 지침’을 통해 콘텐츠 구매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틀을 마련했다.
이 외에도 독일은 지난 2022년 민법을 통해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판매자의 유지·보증·무상 업데이트 제공을 법적 의무로 규정했다. 영국은 2015년소비자권리법(CRA)을 통해 결함이 있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수리, 교환, 가격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으며, 콘텐츠로 인해 기기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자책 등 디지털 콘텐츠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2년 이내에는 판매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규정을 운영 중이다.
한편국내의 경우, 콘텐츠산업진흥법에 이용자 권익 보호 조항이 있으나 구속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인터넷 도박산업진흥법은 인터넷 도박 내 아이템과 계정 등에 대한 권리를 원칙적으로 인터넷 도박사에 귀속시키고 있어, 소비자 소유권 인정은 제한적이다.
21대 국회에서는 디지털 콘텐츠 이용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민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기도 했다.국회입법조사처는‘디지털 콘텐츠 이용자 보호 쟁점 및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하여 그동안 소장용 콘텐츠를 구매한 이용자는 더 이상 콘텐츠를 열람할 수 없게 되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용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콘텐츠이용자 보호지침’은 실효성과 법적 구속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